2025년 9월 현재, 곧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전 대표작 세 편—‘올드보이’, ‘아가씨’, ‘헤어질 결심’—이 어떻게 감독의 스타일과 주제 세계 및 서사적 깊이를 구축해 왔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세 작품을 중심으로 박찬욱 감독 영화의 핵심을 살펴보고,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기대와 베네치아영화제 수상 불발 소식을 함께 짚어봅니다.
올드보이 – 복수극의 새로운 정점
2003년 개봉한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각인시킨 명작입니다. 이유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된 남자가 복수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단순한 장르를 넘어 인간 존재의 폭력성과 공허를 날카롭게 탐구합니다. 영화의 가장 유명한 롱테이크 망치 액션 장면, 그리고 예기치 않은 반전 구조는 한국 영화사의 충격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개봉 당시 제58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 감독의 세계적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지금 짧게라도 ‘격정의 박찬욱’을 만나고 싶다면, 이 작품을 보지 않고 ‘어쩔수가없다’를 본다는 건 아까운 출발일 수 있습니다.
아가씨 – 욕망과 자유의 미학
2016년 개봉한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예술적 완성도가 절정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를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각색해 만든 이 영화는, 상류층 아가씨와 그녀를 속이려는 사기꾼,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욕망을 치밀하게 풀어냈습니다. 김민희·김태리·하정우·조진웅 등 배우들의 연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했고, 특히 김태리의 데뷔작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화려한 미장센과 촘촘한 플롯, 그리고 여성 욕망과 자유를 주체적으로 다룬 시선은 한국 관객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과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작품성을 증명하는 성과였습니다. 이 영화의 감각과 충돌을 기억한다면, ‘어쩔수가없다’가 선보일 정서적 충격을 더욱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헤어질 결심 – 사랑과 미스터리의 교차점
2022년 개봉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멜로와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결합한 수작입니다. 형사 해준(박해일)과 용의자 서래(탕웨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과 의심, 욕망과 죄책감이 교차하는 심리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탕웨이와 박해일의 절제된 연기는 미스터리와 멜로의 경계를 오가며 관객을 몰입시켰습니다. 특유의 세련된 영상미와 치밀한 편집, 감각적인 음악은 ‘아름다운 미스터리’라는 평가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2022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장르적 재미와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수상 불발 소식과 기대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2025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으나,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작품성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오히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세한 감정 다루기,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장면 구성, 세련된 미장센이 이번 작품에서도 드러난 만큼, 영화제의 선택이 아닌 관객의 선택으로 더 오래 기억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전작 세 편을 복기한 뒤 본다면,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어떤 새로운 지점을 탐험했는지 훨씬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는 즐거움
‘올드보이’의 거친 복수극, ‘아가씨’의 미학적 감각, ‘헤어질 결심’의 서정적 미스터리. 이 세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베네치아에서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전작들을 통해 감독의 영화 세계를 미리 경험한다면 관람의 재미와 이해도가 배가될 것입니다. 아직 그의 작품을 접하지 못했다면, 지금이 바로 최고의 타이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