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출간 이후 한국 현대문학의 감정 서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작품은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연애의 본질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깊이 있게 다루며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후 2024년에는 장편영화로 개봉되었고, 같은 해 TVING 오리지널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다양한 매체에서 이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감정, 영화의 장면, 드라마의 시선 각각의 방식으로 독자와 시청자에게 다가온 이 이야기. 어떤 형식이 가장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할까요?
원작 소설 – 문장의 여백 속에서 감정을 만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감각적인 문장과 현실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연작 소설입니다. 특히 주인공 희수의 시점을 따라가는 방식은 독자가 인물의 감정에 직접 이입하도록 유도하며, 사건보다는 내면의 균열과 반복되는 감정의 파동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소설은 단순히 퀴어 정체성이나 연애의 갈등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 자의식, 관계의 불확실성을 꾸준히 따라갑니다. 박상영 작가는 종종 유머를 섞지만, 그 안에는 절제된 슬픔과 냉정함이 공존하며, 이로 인해 독자는 현실감 있게 인물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학이라는 형식은 특히 감정의 ‘여백’을 표현하는 데 유리합니다.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며 직접 상상하고 해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감정적 몰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읽히는’ 유연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국내에서의 성공을 넘어 일본, 대만, 태국, 프랑스 등 10여 개국 이상으로 번역되었으며, 2022년 부커 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이루며 해외에서도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영화 – 김고은과 노상현이 그려낸 또 다른 사랑
2024년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소설 속 인물과 감정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한 작품입니다. 김고은과 노상현이 주연을 맡았으며 이들 우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편성한 점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는 도시를 배경으로 각자의 현실을 감당해내는 인물들로 설정되며, 원작이 담고 있던 감정의 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사랑의 불완전함을 전면에 배치합니다.
문학이 감정의 흐름을 언어로 설명했다면, 영화는 그 감정을 시각화합니다. 배우의 표정, 장면 구성, 음악 등이 감정의 맥을 이끌며 관객의 몰입을 돕습니다. 다만 원작의 서사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에, 책을 먼저 읽은 관객에게는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도시의 외로움, 사랑의 미묘한 온도, 감정의 틈을 정제된 방식으로 담아내며, 원작이 품고 있던 ‘감정의 잔상’을 또 다른 방향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드라마 – TVING의 8부작 옴니버스, 다양한 사랑의 단면
2024년 10월 공개된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의 정서와 주제를 바탕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8부작 옴니버스 드라마입니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회 다른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해 다양한 스타일과 감정선을 제시합니다.
주연 배우로는 남윤수, 이수경, 권혁, 나현우, 진호은, 김원중 등이 출연하며, 에피소드마다 인물 구성과 이야기 구조가 달라집니다. 한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인물들의 ‘사랑’을 조명하며, 현대적 연애 감각과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감독이 연출을 하고 원작 소설가 박상영이 각본을 맡았습니다.
연출 방식 또한 각기 다르며, 현실적이고 절제된 감정 표현을 기본으로 하되, 각자의 시선으로 ‘관계의 온도’를 해석합니다. 각 에피소드 모두 박상영 작가가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사랑의 불완전성과 욕망의 방향성을 담고 있습니다.
TVING에서 단독 공개되었으며, 공개 직후 퀴어 서사의 확장성, 연출의 다양성 측면에서 비평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단일 서사가 아닌, 하나의 원작에서 파생된 네 개의 감정 단편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원작과는 또 다른 방식의 몰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몰입의 형태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 영화, 드라마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감정의 구조와 관계의 본질을 다각도로 탐색한 작품입니다.
- 소설은 내면의 언어와 여백을 통해 감정에 직접적으로 이입하게 만들며, 독자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닙니다.
- 영화는 시각적 미장센과 배우의 표현을 통해 감정의 결을 촘촘히 시각화하며,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에게 다가갑니다.
- 드라마는 복수의 시선과 관계를 제시하며, 현대적 연애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다 넓게 포착합니다.
어떤 형식이 더 몰입된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독자와 시청자가 어떤 감정 상태에서 작품을 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보기 드문 확장성을 지닌 콘텐츠입니다. 문학과 영상의 언어로 모두 만나게 되는 예술의 특별한 재미를 선사할 것입니다.